끝내, 메아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내가 걱정된다고 하셨다.
평범한 길, 200만 원도 적은 돈이 아니라는 말. 결국에는 200만 원을 벌다 보면 나도 한 자리를 하고 있을 것이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라고 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며, 언제나 인생이 행복할 수는 없다고 했다.
많은 돈이 결국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냐는 말과, 돈을 많이 벌어도 결국 행복하지 않고, 주위에 사람이 없어질 것이며, 외롭고 쓸쓸하고 돈은 쓰는 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100% 되는 일이냐고 말씀하셨다.
너무 전형적인 각본에 대한 강요, 이게 나의 첫 번째 메아리였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메아리는 들려오기 마련이라고 배웠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기대하던 것만큼이나 기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어머니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깨지고 부서졌다.
나는 대답했다. 이제껏 각본대로, 바라는 대로 잘 살지 않았냐고. 나에게 주입된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노력했으며, 많은 시간과 돈은 투자했고, 부모님도 그러시지 않았냐고.
그러자, 들려오는 말은 이 정도면 부모로서 부끄럽지 않게 지원 잘해주지 않았냐고, 결국 선택은 모두 내가 한 것이 아니냐고 하셨다. 결국은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맞다 내 삶에 책임은 내가 진다. 나도 너무 잘 알고 있고, 내 삶을 책임지고 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꿈에 대한 방향은 옳지 못하다고 하며, 각본에 따라 '바르게' 살라고, 몹시 걱정된다고 말하며 이를 강요했다. 얼마나 걱정되고 마음이 안 좋은지 아냐고 1시간 30분 넘게 통화를 하며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내 책임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았냐는 말씀을 하셨다. 맞다. 그에 대한 지원을 받았고, 힘들었지만 적어도 그때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 지지해주셨다.
그러나, 각본을 따라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건강을 잃어가며 헌신한 결과는 학자금 대출과 10년에 가까운 시간과 노력의 소비 그리고 어머니 주변에 사는 내 또래 자식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라는 걱정이라는 명목의 강요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이 원하는 60대까지 회사에 헌신하며, 그들이 주는 돈을 받고, 대출로 집과 차를 사고, 성대한 결혼식을 열고, 자식을 낳아 그들이 충분히 자라기까지 헌신하며, 결국 60이 넘어서는 알아서 하라는 그 말이었다. 그렇게 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행복할 것 같냐는 물음에는, 모두가 항상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고, 내가 말하는 의견이나 내가 하는 행동이나 방향성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것은 붕 뜬 망상이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어머니께서 하신다는 것에 정말 마음이 아팠고, 부모님이 그런 각본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지금 정년을 앞둔 아버지와 은퇴가 멀지 않은 어머니는 남은 삶을 잘 살아가길 원하지만, 재정난에서 헤매고 계시며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변화하려 하지 않으신다. 방법을 알려드려도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하며, 쉬운 방법으로 여생에 필요한 '돈'이 굴러들어 오길 원하신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지만, 이는 서로를 더 위하고자 하는 것이며, 서로의 선택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이미 성인으로 성장하고 가치관이 형성되어 버린 이상, 각각의 개인으로써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지시와 강요가 아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되지 않더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음이 몹시 울적하고, 내가 각본대로 잘 살길 간절하게 바라며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시는 어머니가 안쓰럽다. 어제의 1시간 30분 간 이어진 강요로 인해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정신적 에너지를 쏟고, 편안히 잠을 못 이루고 꿈에서도 이 대화에 이어진 내용이 나오고, 아침을 상쾌하지 못했으며,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업에 대한 공부와 시스템 구축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제 통화로 집중을 도저히 할 수 없어 글로써 마음을 정리한다는 미명 하에 여기에 쏟고 있는 것이 화가 날 정도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 이렇게 소모적으로 시간을 사용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다.
이 심리적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심리적 오류와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메아리에 대해서 나는 어떤 반응을 하고 평가하고 조정하고 다시 행동해야 할까.
이게 대오각성을 하는 계기라는 것인가. 화가 나는 에너지가 자기 계발에 쏟아지도록 스위치를 누르면 되는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는 이 문제를 매번 내버려 둬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연락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거짓말을 하고 바라는 삶을 사는 것처럼 연기를 할 것인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대화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나 영상을 소개해드릴까.
(이 생각을 하며, '자식과 대화하는 법'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와 부모님 같은 의사소통의 문제, 또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흔히 일어나는 문제는 아닐까. 그리고 이를 해결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대화의 마지막이 되어서는, 어머니께서 걱정하는 바를 다 쏟아부으시고 내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시고는 마음이 후련하다고 하시며 조금 침착해지셨다. 그때 내 마음은 이미 다 부서지고 난 후였다.
그럼에도 꼭 드려야 된다고 생각한 말이 있었다.
이런 형태의 통화가 반복되면 내가 앞으로 책임과 스트레스가 더 많아진 시점에는 어머니 전화를 받지 않고 싶어 하며, 더 이상 우리는 통화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한계가 조금 더 높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 한계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결국 어머니도, 나도 하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말씀드렸다. 나도 어머니와 하는 통화가 받기 싫고 대화하기 싫은 그런 통화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이대로라면 결국 그렇게 해버릴 내 모습이 너무 확연하기에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부정적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 확률에 있는 무게 추를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직 마음이 그리 정리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읽으니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조금은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기업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며, 청지기(Steward)다.
나는 기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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